[기자수첩] 쏟아지는 '전기차 화재' 대책…보여주기식 '미봉책'

  • 입력 2024.08.14 15:15 | 수정 2024.08.14 15:24
  • EBN 박성호 기자 (psh@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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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구매를 고려하던 지인에게 기아의 신형 전기차 'EV3'를 추천했다. 그는 가격과 차급 대비 압도적인 성능 및 편의사양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19만km 가까이 주행한 모닝과 '헤어질 결심'을 하던 차였다.


벤츠 전기차 화재 사건 이후로 전기차를 선택지에서 완전히 지웠다. 문제는 전기차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과 우후죽순 쏟아지는 전기차 화재 관련 대응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주차 공간이 다소 협소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그는 "전기차를 사도 마음대로 충전도 못 할 텐데, 뭘 믿고 전기차를 사야 하냐?"고 강조했다.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건 이후 정부와 국회 등에서 전기차 관련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가 보여주기식 '미봉책'에 불과하다. 특히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관계 부처 회의는 전기차 포비아를 확산하는 '트리거(방화쇠)'가 됐다.


이날은 정부가 주재했다는 점에서 그 여느 때보다 주목도가 높았다. 화재와 직접적 연관성이 있는 차량을 소유한 차주는 물론, 전기차 소유주들은 전기차 화재 불안감을 덜 수 있는 대책이 발표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발표한 대책은 '속 빈 강정'이다.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 권고, 전기차 제조업체에 무상 점검 권고, 일정 규모 이상 지하 주차장 소방 시설 긴급 점검 등 예측할 수 있는 대책이 쏟아졌다. 확산하는 전기차 '포비아(공포증)'을 막기 위한 대책은 요원했다.


전기차 화재 관련 이슈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대책은 더욱 질타받아야 한다.


전기차 화재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24건에 불과했던 화재는 2022년 43건, 2023년 72건 등으로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전기차 화재 발생 비율은 0.013%로 내연기관차와 차이가 없지만, 화재 이후 진압이 어렵다는 점에서 전기차 보급 확대를 막는 주요 원인으로 꾸준히 지적돼 왔다. 이번 긴급 대책 발표는 정부가 보급 확대에 힘쓸 뿐, 안전 관련 대책은 아직도 뒷전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이에 지자체도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일부 지자체는 지하 또는 타워주차장에 전기차 출입을 제한하고, 배터리 잔량 90% 이하의 전기차만 지하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요청하고 있다. 지상 주차장 또는 충전소가 없는 전기차 차주의 불편은 생각하지 않는 근시안적 대책이다.


국회 또한 전기차 중전 시설 근처에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법안을 발의한 상태지만, 대다수가 사후약방문 대처에 불과하다. '전기차는 위험하다'는 두려움을 해소할 대책은 없다.


전기차 화재에 관해서는 미국의 대처를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9월 닛산 미국 본사에서 충전 중이었던 전기차 '리프'가 불타올랐고, 화재 진압에 무려 2만갤런(7만6000L)의 물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내연기관차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는 500~1000갤런(2000~4000L)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비교되면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트리거(방아쇠)'가 됐다.


미국 소비자 제품 안전 위원회는 배터리가 잘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한 안전 요건과 인증을 의무화하는 규칙을 적용했다. 연방 차원에서는 의원들이 이 과정을 가속할 동반 법안을 마련했다.


예로 법안이 통과되면 제조사가 180일 이내로 새로운 표준을 적용하도록 지시하는 등 법안 정착을 가속한 것이다. 이 외에도 전기차 충전기, 케이블, 배터리 팩 등 장비 관련 규칙과 관련한 법안을 내놓기 위해 지속해 논의하고 있다.


전기차 포비아의 근본 원인은 불안과 신뢰 부족이다. '전기차는 안전하다'는 인식이 생기지 않는다면 당분간 전기차 및 차주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을 테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제조사 및 유관기관과 협의해 미국처럼 적극적인 대응책을 펼쳐야 한다. 기업의 자율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고민에 망설이다가 '전기차 포비아'가 팽배해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정부는 업계와 전문가 의견 수렴, 관계 부처 회의 등을 통해 개선 방안을 조율한 뒤 내달 초 전기차 안전 종합 대책을 발표한다. 현재 차주는 물론 미래의 전기 차주가 될 이들 모두 '전기차는 안전하다'는 인식이 생길 만한 방안이 발표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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